행사
“공평(公平)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本良)이다. 연(然)함으로 아등(我等)은 계급을 타파 하며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야 우리도 참사람이 되기를 기(期)함이 본사의 주지이다...”
-형평사주지(衡平社主旨) 중, 1923년
여는 글
일 백 년 전입니다. 1923년 4월 25일 진주 대안동 진주청년회관에서 80여 명의 백정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모여 ‘형평사(衡平社)’를 창립합니다. 형평사는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만들자는 단체(社)를 뜻합니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제도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이 열렸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불평등한 세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정은 가장 천하디 천한 신분이라 노동자와 농민들에게도 차별과 혐오를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형평사는 주지(主旨)를 통해 백정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없애고 공평(公平)과 애정을 사회와 사람의 바탕이라 선언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상식에 가까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야기가 당시에는 상당한 문제와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다름 아닌 반형평 사건의 발발입니다. 형평사가 창립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진주에서는 형평운동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립니다. 어느 주민과 형평사원 사이의 사소한 충돌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백정에 대한 비백정들의 뼈 속 깊은 차별의식이 발현된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쇠고기 불매운동은 물론 형평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은 모두 백정으로 취급해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형평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 반형평사건은 점차 사그라들었습니다.
형평사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거대 단체로 발전하게 되면서 백정의 실질적인 차별은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도 백정과 그 출신 가족들은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라는 사회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현대문학》에 연재된 황순원의 소설 <일월>에도 주인공인 인철이 백정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진주에서 형평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백정의 후손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없어 과거 형평운동의 미시 역사를 연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형평운동을 들여다보면 2022년 지금 여기 우리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백정은 고깃집 브랜드로 사용될 정도로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지만, 또 다른 차별과 혐오가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짓누르고 있습니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입니다. 특히 요즘은 장애인 이동권이 쟁점화 되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100년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형평운동과 관련된 1차 사료와 형평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진주의 ‘형평운동기념사업회’ 활동 자료를 아카이브 형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더불어 형평운동과 관련된 기존 예술 활동을 문학과 삽화 그리고 영화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수개월에 걸쳐 형평운동을 같이 고민하며 자신들의 조형언어로 이를 재구성한 권은비, 서평주, 최수환 작가의 신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이 전시를 관람하는 모든 분들이 ‘형평’의 정신을 가슴 한 편에 품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옮김 [경남도립미술관 전시안내글 중]
기업 홍보를 위한 확실한 방법협회 홈페이지에 회사정보를 보강해 보세요.